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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기록

프랑스에서 임신, 출산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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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 불가 두 줄. 삐빅. 임신입니다.

 

평소 생리 주기가 매우 정확하고, 성격이 급한 나는 생리 예정일이 되기도 전에 임신 테스트를 해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참다가 생리 예정일이 되자마자 찐한 두 줄을 보았다. 임신이구나! 

 

한 번의 유산 경험이 있는지라 남편과 너무 들뜨지 않으려 노력하며 함께 조용히 기뻐하고, 몇 주 뒤 산부인과 검진을 예약했다. 어차피 알게 될 거 이번에는 굳이 12주 안정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초음파로 확인 후 가까이 사는 시댁 식구들에게는 바로 얘기할 생각이었다. 대신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는 예정된 한국 방문일까지 기다렸다가 한국에서 직접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때쯤이면 약 14주, 15주 어느 쪽으로든 결론이 나 있을 것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임신 기간에 총 7번의 필수 검진이 있다. 이 중 한 번은 임신 3개월 이전에 임신 확인과 임신 시작일을 확인하기 위해 가고, 임신이 확인되면 4개월부터는 출산 전까지 매달 한 번 간다. 한국에서는 임신 막달이 되면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오라고 한다던데 여기서는 특별한 예외 없이 한 달에 한 번, 임신 예정일이 다 되었는데도 출산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유도 분만 논의를 위해 한번 오라고 하는 게 다다.  

 

임신 기간 내내 검진, 그리고 출산까지 산부인과 의사가 진행하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매달 받는 검진을 사쥬팜 Sage femme이라고 하는 임신, 출산 전문 조산사에게 받을 수도 있다. 내 경우에는 건강상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 검진은 산부인과 의사와 하고 출산 당일에는 병원에서 조산사가 아기를 받아주었다. 

 

 

초음파로 처음 만나는 아기의 모습. 두근두근 심장 소리, 하리보 젤리. 작은 발 모두, 잊기 쉽지 않은 충격적인 귀여움이다.

 

매달 이뤄지는 검진 이외에 3번의 필수 정밀 초음파도 있다. 한국에서는 검진 때마다 간단하게라도 초음파를 봐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는 사설 클리닉을 제외하면 초음파를 봐주지 않는듯하다. 

 

첫 번째 정밀 초음파: 12주쯤. 목 투명대 확인 (기형아 선별 검사)를 위해 진행 
두 번째 정밀 초음파: 22주쯤. 보통 이때 아이의 성별 확인
세 번째 정밀 초음파: 32주쯤. 아이 위치 및 자세 확인

 

위에 적은 내용 이외에도 정밀 초음파를 통해서 아이의 장기, 손가락 발가락, 머리둘레, 배 둘레, 발 크기 등 각 부위를 세세하게 확인한다. 내 경우 12주쯤에 진행한 정밀 초음파에서 아기의 목 투명대가 조금 두꺼워 중간 이상의 위험군으로 판명되어 추가 기형아 검사를 진행했다. 첫 번째로 진행한 것은 피검사로, 산모의 혈중 특정 성분 les marquers sériques 의 농도를 보는 검사였다 . 이 성분은 태반이나 태아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너무 높거나 너무 낮은 경우 다운증후군의 위험이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이 검사 결과까지 종합해서 봤을 때도 중도 이상의 위험군으로 나와 그다음 단계인 니프티 검사 DPNI (le Dépistage Prénatal Non-Invasif) 까지 진행하게 되었다. 니프티 검사는 산모 혈중 태아의 DNA를 검사하는 것으로 이전에 한 검사보다 훨씬 높은 정확도를 보인다. 

 

나는 한국 가는 비행기를 미리 다 예약해둔 상태에서 니프티 검사까지 하게 되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내가 사는 곳은 프랑스가 아니던가. 프랑스에서 이런 검사의 결과가 하루 이틀 만에 나올 리도 만무했다. 검사 결과는 아니나 다를까 내가 한국으로 간 뒤에나 나올 예정이었다. 혹시라도 높은 확률로 다운 증후군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를 받으면 임신을 중단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더욱 착잡해졌다. 한국 가서 기쁜 마음으로 가족들에게 임신 사실을 고백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다 무산될 것처럼 보였다. 다행히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담당 의사가 이메일로 결과를 보내주었고, 결과 역시 긍정적이었다. 임신 15주 만에 드디어 처음으로 이제야 진짜 이 아이를 길러서 낳는 거구나 실감이 났다. 그전까지는 혹시나 떠나보내야 할지도 모르는 아이라는 생각에 일부러 정도 붙이지 않고, 태명도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랑 수업한 사쥬팜은 꼭 짐볼에 앉아 수업을 듣게 했다. 남편도 덩달아 같이 통통.

 

이 외에도 임신 7개월 이후 임신이 거의 임박했을 때부터 조산사와 함께 아기 출생 및 부모 되기 준비 Préparation à la naissance et à la parentalité 라는 수업을 8번 진행한다. 위에서 얘기한 검진이나 초음파처럼 필수로 진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개인의 선택이지만, 8번까지 무료로 수업을 들을 수 있다. 한 세션 당 약 30분 정도 임신 기간 고민, 임산부 긴장을 풀어주는 마사지 (이거는 남편을 위한 수업), 출산 신호, 출산 시 가방 싸는 법, 진통을 줄일 수 있는 자세, 출산 과정, 출산 시 호흡법, 신생아 돌보는 법, 모유수유 등 다양한 주제로 진행된다. 단체 수업도 있고, 조산사와 1:1로 진행할 수도 있는데 나는 남편과 함께 단독 수업을 받았다.

 

평소 요가를 즐겨서 복식 호흡이라면 자신 있었고, 조산사와 함께 진통 시 호흡법, 출산 때 힘주는 법까지 연습하고 잘한다고 칭찬까지 받고 나니 진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만심이 충만하게 찰랑찰랑 머리 끝까지 차서 넘쳤다. 나는 예정일이 꽉 차도록 ‘여러 번 회사에 있는 남편을 불러 말어’ 하면서 가진통을 겪었는데, 누군가 그랬던가 진진통이 오면 모를 수가 없다고. 알량한 진통 주기 어플 버튼 누르고 있을 정신 없다고. 나의 진진통은 고요한 새벽 2시쯤 찾아왔다. 정말 모를 수가 없었다. 요가 복식 호흡? 조산사에게 배운 호흡법? 어디 갔는지 다 사라지고 가쁘게 들숨 날숨 내쉬면서 진짜로 남편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싶은 고통이 왔다. (남편이 '호흡법 배운거 기억하지? 숨 깊게 쉬자' 이딴 소리 했다가 정말로 쥐어 뜯길 뻔 한 것은 안 비밀) 초산이니 진통 간격이 5분 이하가 되면 병원으로 오라고 했는데. 아직 진통 간격이 10분, 7분, 8분, 들쭉날쭉한데 화장실에 갔다가 피를 보고 말았다. 예쁜 분홍빛 이슬이 아니라 ‘선혈이 낭자하다’ 할 때 그 쌔빨간 피. 아기가 잘못될까 싶어 간격이 5분으로 줄어들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남편과 짐을 챙겨 응급실로 향했다. 

 

도착해서 수속을 마치고 조산사가 들어와 첫 내진을 진행하고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자궁 경부가 7cm 열렸어요. 무통 하실 거죠?

 

진통이 시작된 뒤로 2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7cm라니. 온종일 진통했는데 1cm 밖에 안 열렸다느니, 초산이라 오래 걸렸다느니 하는 주변의 말만 철석같이 믿었는데! 진통 간격 5분 기다렸다가는 집에서 남편이 애 받을 뻔한 상황이 아닌가! 정말 모든 임신은 다 다르다더니.

 

 

지금껏 드라마에서 봤던 남편 머리털 다 뽑는 분만 장면은 없었다. 무통 만세!

 

 

분만 자체에 대해 한 줄 평을 남기자면 ‘무통 천국 자연주의 분만’이라고 할까. (이전 글: 프랑스 아이처럼 - 직접 경험한 프랑스 육아법)

 

주말 새벽 응급실이었지만 다행히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마취과 의사가 와서 무통 천국을 선사해주었다. (프랑스 응급실 기준 이 정도면 정말 빨리 처치해준 것이다) 무통을 미리 경험한 친구들에게 들었던 “공포의 새우 자세”도 없었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허리를 구부리고 있자니 이미 끝났다고 한다. 알고 보니 무통 척추 주사가 아플까 봐 먼저 국소 마취를 해준 것이었다. 자궁 경부가 더 열릴 때까지 나는 편하게 누워 한동안 부족한 잠을 충전하기도 했다. 모자라면 알아서 더 누르라고 주고 간 버튼은 단 한 번도 누를 필요 없을 만큼 빵빵하게 얼얼하게 마취를 해주었다. 

 

한국에서 3대 굴욕이라 부르는 제모, 관장, 내진 중 제모와 관장은 나의 자연주의 프랑스 출산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미리 제모하지 않은 경우 간호사가 직접 음부를 제모해준다고 해서 3대 굴욕 중 하나로 꼽히는데, 프랑스에서는 털이 있건 말건 개의치 않고 분만을 진행했다. 관장도 마찬가지. 오자마자 무통 주사 주렁주렁 달아주는데 관장하러 갈 여유가 어디 있을까. 내진이 있기는 했지만 조산사가 와서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넣어 보는 정도였지, 친구들에게 들었던 것처럼 자궁경부를 막 고통스럽게 휘젓는 방식은 아니었다. 무통을 맞은 이후에는 휘저은들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고. 이건 내가 이미 경부가 많이 열린 채로 도착해서 비교적 덜 아프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세상에 나와 우렁차게 울음을 터뜨리고 처음 안아들었을때 남편과 "해냈어 해냈어" 하면서 펑펑 울었더랬다. (그리고는 빨리 사진 찍으라고 정색함)

 

분만실에 함께 있었던 남편 말로는 내가 “똥 누듯이 힘주세요”라는 조산사의 말에 세 번 정도 힘을 줬더니 아기가 나왔다고 했는데, 사실은 아기가 생각처럼 잘 나오지 않아서 진공 흡입기 + 대형 숟가락 같은 거로 아기 머리를 잡고 돌려서 끄집어냈다는 게 더 정확하다. 무통 천국으로 아무런 고통도 느낄 수 없었던 나의 소감은 뭐가 꽉 막혀있던 것이 쑤욱 빠져나간 느낌? 그리고 실제 아기를 낳는 시간보다 후처치 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회음부 절개도 없이 머리 큰 아기를 낳자니 아랫도리가 갈기갈기 찢어진 것. 회음부 재활 운동에 관한 이야기는 또 다른 글에 적어보도록 하겠다.

 

분만 후처치가 끝나자마자 얼떨결에 아이를 안고 초유를 먹였다. 분만실에서 나와 입원실로 옮길 때 깨끗하게 닦여 옷을 입힌 아기도 나와 함께 이동해서 그때부터 퇴원까지 아기는 내 곁을 단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제발 누가 데려가서 한두 번 쯤 분유를 먹였어도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을 텐데. 신생아를 태어나서 처음 본 나를 잘도 믿고 입원 내내 모자동실이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미리 프랑스에 와 계시던 친정엄마가 매일매일 남편을 통해 밥을 싸서 보내서, 다행히 나는 무자비한 프랑스식 병원 밥을 먹지 않고 산모 미역국을 먹으면서 72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병원에 갈 때마다 이렇게 외치고 싶어진다. Vive la France! 아니, Vive la sécurité sociale! 프랑스 의료보험 만세! 예약 잡기 좀 힘들면 어떱니까 제가 미리미리 잡으면 되지요.

 

🤰프랑스 임신, 출산 영수증🤱

- 임신 중 필수 검진 7번 
- 필수 정밀 초음파 3번 
- 기형아 선별 피검사 및 니프티 검사 
- 매달 피검사 (톡소플라스마 항체 확인) 
- 조산사와 수업 8번
- 분만 및 입원 (내 경우 72시간. 1인실을 쓰면 의료 보험 환급 기준을 넘어갈 수도 있지만, 나는 뮤추엘 (사보험)이 있어 추가분 역시 보험이 커버해주었다) 
- 퇴원 후 회음부 (혹은 복근) 재활 운동 1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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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al: 0 € 

(프랑스는 한국처럼 정해진 금액 안에서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임신 출산에 관련된 모든 비용이 의료 보험에 의해 100% 커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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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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