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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기록

프랑스 아이들의 자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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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이들의 자제력 하면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남편의 어린 사촌 동생들이 지금보다도 더 어렸을 때의 일이다.

 

남편의 이모네 가족이 주재원 생활 중에 딱 2년 정도 프랑스에 돌아와 살 때, 남편과 함께 그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구떼 시간 (=오후 4시경, 프랑스의 국민 간식 시간)이 되자, 당시 10살, 8살, 5살쯤 되었을 어린 사촌 동생들은 일제히 자기 방으로 달려가 꽁꽁 꿍쳐두었던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초콜릿을 가지고 나왔다. 여기서 나는 이미 1차 충격을 받았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지가 언젠데, 그때 받은 초콜릿이 아직도 남아있단 말인가. 나였으면 받은 그 날 이미 반쯤 해치우고, 그 후 일주일 이내로 남은 반도 다 먹어버렸을 것이다. 아이들이 그렇게 꺼내온 초콜릿 몇 조각과 엄마가 꺼내 준 비스킷, 과일 주스와 물을 조금씩 먹고는 그 누구도 불평 없이 초콜릿을 다시 고이 싸서 각자 서랍에 넣는 모습에 2차 충격을 느꼈다. 나는 그게 유치원생, 초등학교 저학년 나이인 아이들의 행동이라는 게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간식이라도 하루에 딱 한 번 간식 시간에만 적당한 양을 먹는다는 게 놀라워 보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게 지난 글 (프랑스 아이처럼 - 직접 경험한 프랑스 육아법)에서도 언급한 적 있는 프랑스의 “국민 식사 시간”과 관련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침, 점심, 간식 (구떼 goûter), 저녁을 먹는 식사 스케줄은 프랑스에서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대부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아이가 보통 어린이집, 유치원, 혹은 학교에서 먹는 점심을 제외하면, 아침이나 저녁 식사 시간이야 가정마다 먹는 시간이 좀 차이 날 수도 있지만, 구떼 시간은 프랑스에서도 앞뒤 다 떼고 “quatre heures 4시”라고도 불릴 만큼 통용된다. 신생아 시기를 벗어난 후부터는 아무리 어린 아기라도 하루 네 번 식사 리듬을 유도하도록 권장하는 프랑스에서 자란 아이라면 자연스럽게 식사 중간에 군것질하는 습관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프랑스에서는 간식 시간이 아닌 아침, 점심, 저녁 식사도 대부분 전식-본식-후식의 형태로 먹으며 매 끼니 디저트를 먹으니 비교적 군것질 욕구가 덜 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하는 남편과 매일 오후 4시 구떼 시간 = 티타임을 가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편식이 심해 뭐든 맛있게 먹기만 하면 언제 먹든, 뭘 먹든 부모님이 크게 터치하지 않는 집에서 자란 나는 먹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절제를 배우지 못했다. 식사 바로 전이거나 말거나 내가 먹고 싶으면 과자나 초콜릿 같은 단것도 먹고, 야식도 숨 쉬듯이 먹었다. 그러다 현 남편, 구 남친과 동거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의 군것질/야식 바람에 단 한 번도 동참해주지 않는 이 반듯한 프랑스인이 진심으로 답답하고 짜증 나기도 했었다. 프랑스에 와서 남편 사촌 동생들을 보면서 그때서야 대충 '이 인간도 어렸을 때 저렇게 컸기 때문에 지금 군것질도 야식도 안 하는구나' 이해하게 됐다. 지금은 함께한 세월이 십 년이 넘어가다 보니 나는 군것질과 야식을 줄였고, 남편은 가끔 풀어지기도 해서 적정선에서 균형을 맞춰가고 있다. (군것질, 야식 다 안 하는 게 베스트지만 그렇게만 살면 무슨 재미가 있나요)

 

아무튼 남편 사촌 동생 삼 남매는 아주 어릴때 부터 끔찍하게 길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 (대략 저녁 7시쯤부터 시작해서 새벽 1-2시까지도 이어진다) 시간에도,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고 늘 어른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커틀러리를 바르게 사용해서 식사했다. 본식과 후식 사이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치즈 코스가 나올 때는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고 자리를 떠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다. 가장 편한 장소인 집에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아이들이니 식당에 가도 소란 피우지 않고 얌전히 식사하는 건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아이처럼” 저자가 프랑스 식당에서 점잖게 식사하는 아이들을 보고 충격받았다고 이야기할 때 나 역시 강하게 공감했다.

 

 

테이블에 앉아 점잖게 먹기는 하는데... 채소를 먹지 않더라구요.

 

단, ‘프랑스 아이들은 무엇이든 맛있게 먹는다’는 저자의 생각에는 단 1%도 동의할 수가 없었다. 물론 프랑스 아이 전체를 조사해보면 그런 아이들의 비율이 더 높은지는 모르겠지만, 내 주변 “프랑스 아이들”은 모두 절대 입에도 안 대는 음식이 최소 한두 가지는 있는 편식왕들이기 때문이다. 해산물은 입에도 안 대고, 생선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배로 만든 디저트는 입에도 안 대는 내 남편부터, 레몬즙이 들어간 음식은 먹지만, 레몬 제스트가 들어간 시큼한 디저트류는 입에도 안 대는 남편의 동생, 그리고 위에서 말한 믿었던 착한 사촌 동생들마저 모두 둘째가라면 서러운 편식쟁이들이다. 특히 엄청난 자제력의 어린 사촌들은 위에서 말한 차분한 모습으로 소스도 없이 오직 버터에 비빈 파스타와 소시지 같은 음식만 먹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제는 셋 다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어 예전보다 다양한 음식을 먹기는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는 것은 꺼린다. 역시나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는가 보다.


당연히 식사 시간이 아닐 때 군것질을 하지 않는 것, 식사 시간에 식탁에 점잖게 앉아 먹는 것, 편식하지 않는 것 등이 모든 프랑스 아이들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일반화 할 수 없다는 것, 아시죠?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적은 글이니 재미로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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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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