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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소리

나는 왜 “촉감 놀이”가 불편할까 - 몬테소리와 촉감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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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나 스파게티 면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해맑게 웃는 아기, 두부를 손으로 뭉개고 맛도 보며 즐거워하는 아기, 미역으로 가득 찬 욕조에서 노는 아기. 아기가 있는 친구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최소한 하나씩은 있는 사진들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촉감 놀이가 언제부턴가 영유아 놀이 레퍼토리에 필수가 된 듯하다. 집집마다 아기 촉감 놀이 매트 하나 없는 집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촉감 놀이”가 늘 불편했다.

사진으로 보는 것도 불편했고, 내가 직접 한다고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만약에 누군가 왜 촉감 놀이가 불편하냐고 물어봤다면 아마 한 번에 그 이유를 대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몬테소리 교육에서는 감각을 중시한다며, 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그런데 왜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는 촉감 놀이가 불편해?

그러게 말이다. 그래서 그 이유를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아마도 나는 아기가 이유식을 흩치는 것을 유독 싫어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로 촉감 놀이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치우기가 힘드니 말이다. 가뜩이나 게으른 엄마에게 치울 거리 +1은 매우 취약한 아킬레스건인 것이지. 하지만 엄마의 귀차니즘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묘한 불편함이 찝찝하게 남는다.

그렇다면 아기 촉감 놀이의 단골 등장 재료인 두부, 국수, 미역 이런 것들이 외국에 사는 나에게는 다 귀한 식자재들이기 때문일까? 물론 한국보다 비교적 구하기 힘든 재료들인 건 맞지만, 프랑스에 지천으로 널린 파스타로 대체해서 상상해보아도 불편함은 여전하다.

그럼 나는 대체 왜 “촉감 놀이”가 불편한가?

 


음식은... 먹는 거니까!


내가 말하고도 마치 우리 엄마가 “음식으로 장난치는 거 아니다”하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아 그 고리타분함에 소름이 끼치지만, 음식은 먹는 것이지 장난감이 아니니까!

 


아기가 식재료로 온몸을 샤워하며 노는 것을 허용하고 귀여워하면서 동시에 음식은 먹는 거고, 귀한 거고, 낭비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감사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을까?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어른인 나는 그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할지 알고 있지만, 내가 지키고자 하는 그 선을 아기도 과연 이해하고 따라와 줄까 하는 의문이 들 뿐이다. 아기가 촉감 놀이를 신나게 즐긴 뒤 식사 시간에 같은 식재료로 테이블에서 같은 장난을 쳤을 때 나는 과연 쿨하게 넘길 수 있을까? 만약에 이때 아기를 제지한다면 아기는 혼란을 느끼지 않을까?

일관성 있는 육아를 지향한다면 먹는 것과 놀이는 연결하기가 힘들어 보인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촉감 놀이 ≠ 몬테소리


손으로 직접 만질 수 있고 오감 자극하는데, 그럼 촉감 놀이는 몬테소리인 거 아니야?

몬테소리 교육의 관점에서 봤을 때 욕조나 김장 매트에 음식 재료와 아이를 담아 두고 하는 촉감 놀이는 실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판타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몬테소리가 오감을 통한 탐색을 강조하는 만큼이나 강조하는 것이 실제적인 것이다.

 

실제적: 현실에 바탕을 두거나 현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스파게티를 맨몸에 뒤집어쓰는 것은 얼마나 아이의 현실과 맞닿아있는가?

 


그리고 다른 놀이로 쉽게 대체할 수 있으니까


아기의 오감은 미끌미끌하고 재밌는 촉감의 재료가 아기의 온몸에 닿을 때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아기의 오감 만족 촉감 놀이는 365일, 24/7 항상 작동 중이다. (물론 여기에는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다. 아기가 잘 때는 모든 오감이 풀 작동하는 건 아닐 것이다)

 

실생활과 연결되어 있고, 목적이 있는 활동인 "베이킹"은 아주 완벽한 몬테소리 감각 활동의 예시다.


아기가 아주 어릴 때는 엄마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고 목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몸에 닿는 옷과 각종 물건의 느낌을 느끼고, 다양한 맛의 이유식을 맛보는 것부터 아기에게는 충분한 오감 자극이 된다.

아기가 좀 더 자라 온 집안을 기어 다니고 걷기 시작하면 관심이 가는 물건을 보고, 자기 스스로 손을 뻗어 만지고 입에 넣고, 흔들어 소리도 들으며 감각적 탐색을 한다.

 

집안뿐일까, 야외로 나가자! 피부에 느껴지는 햇볕, 바람, 다른 아이들이 떠들며 웃는 소리, 지나가는 차 소리, 풀 냄새, 흙냄새, 비가 내린 날의 냄새, 그늘의 서늘함, 마른 흙과 진흙의 느낌.. 모든 것이 아이를 위한 촉감 놀이, 아니! 오감 놀이 재료다.

 


오해하지 마세요. 촉감 놀이가 나쁘다는 건 아니랍니다.


촉감 놀이를 통해 아이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 다양한 감각을 자극할 수 있다는 데에는 나도 이의가 없다. 촉감 놀이가 나쁘니까 하지 말아야 한다! 는 것은 전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촉감 놀이의 교육적 효과와 오락적 효과를 믿는 양육자는 지금처럼 촉감 놀이를 계속해주면 된다.

다만 몬테소리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촉감 놀이에 대해서, 그리고 아기의 감각적 탐색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한 번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화두를 던져보는 것이다.

또, 혹시나 다양한 이유로 촉감 놀이를 아기에게 자주 해주지 못한 엄마 아빠가 있다면, 적어도 내가 촉감 놀이를 자주 안/못해줘서 아기의 오감이 잘 발달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고 너무 걱정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촉감 놀이를 대체할 수 있는 몬테소리 감각 활동에 대해서도 천천히 정리할 기회가 있겠지요. 그 때까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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